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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예술의 경계" 바빌론(2022)이 말하는 영화의 본질

by manymoneyjason 2025. 4. 9.

“광기와 예술의 경계" 바빌론(2022)이 말하는 영화의 본질
바빌론(2022)

시대 전환 속에 피어난 혼돈과 혁신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은 단지 기술적 진보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는 배우, 감독, 제작자, 모든 영화인의 운명을 송두리째 흔든 변화였으며, 셔젤은 이 전환기를 영화사적 대재앙이자 창조적 혼돈으로 묘사한다. 이 시기 무성영화의 과장된 표현 방식은 유성영화의 사실주의와 맞부딪히며, 관객의 취향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바빌론 속 인물들은 이 흐름 속에서 시대에 적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예를 들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잭 콘래드 캐릭터는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던 무성영화 스타였지만, 목소리 연기가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그는 점차 시대에 밀려나고, 결국 자신의 몰락을 받아들일 수 없는 채 극단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와 대비되는 인물이 마고 로비의 넬리 라로이. 그녀는 무성영화 시절엔 자신만의 에너지로 주목을 받지만, 유성영화로의 전환과 함께 그녀의 불안정한 삶과 성격은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 이 둘의 이야기는 단지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시대가 바뀌며 누가 살아남고 누가 잊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셔젤은 이러한 격변의 시대를 단순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교체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이 변화를 인간 존재와 예술, 욕망과 파멸의 문턱에 선 전쟁처럼 다룬다. 혼돈의 파티 장면, 무성영화 촬영장의 미친듯한 열기, 그리고 유성영화 촬영의 불편한 정적은 단순한 분위기의 전환이 아닌, 영화라는 예술이 어떻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결국 이 모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바빌론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시대를 따라 진화하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 이 거대한 질문은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꿈과 욕망, 그리고 몰락을 통해 강렬하게 울려 퍼진다.

 

영화 속 인물들: 꿈, 욕망, 그리고 몰락의 초상

바빌론(2022)은 단지 영화 산업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다. 이 영화는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삶과 욕망,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찬란한 성공과 잔인한 몰락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데이미언 셔젤은 시대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 개개인이 어떻게 갈망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과거 무성영화 시절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던 인물이다. 그는 명성과 사랑, 부를 모두 가진 듯 보이지만, 유성영화로 넘어가면서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위대한 예술가로 인식하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의 몰락은 단순한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변화 앞에서 자존감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의 비극을 보여준다. 잭은 영화가 예술이던 시절을 상징하며, 점차 상업성과 기술 변화에 밀려 사라지는 “과거의 영광” 그 자체였다.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는 그와는 정반대다. 무명에서 단숨에 스타로 도약하는 그녀는 자유롭고 광기 어린 에너지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녀의 성공 역시 불안정하고 일시적이다. 자본과 명성의 세계는 그녀를 원하는 동시에 파괴하려 한다. 넬리는 자신의 진짜 정체성보다는 이미지와 인기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소모해 버린다. 그녀의 욕망은 순수한 꿈이 아니라, 점점 더 파괴적인 집착으로 변모하고, 이는 곧 몰락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편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는 영화 속 인물 중 가장 인간적인 여정을 보여준다. 그는 처음엔 영화계의 무대 뒤를 지켜보던 인물이지만, 점차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며 성공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 역시 이 세계의 냉혹한 이면을 보게 되고, 결국 사랑과 이상,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의 시선은 마치 관객의 시선처럼, 영화계의 겉과 속을 모두 목격하며 이 화려한 세계가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조용히 증명한다. 이렇듯 바빌론의 인물들은 단순한 성공과 실패의 서사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영화라는 거대한 꿈의 기계 안에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존재들이다. 셔젤은 이들을 통해 단지 "성공했다" 혹은 "망했다"라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어떤 욕망을 품고, 어떤 모순 속에 살아가는지를 탐구한다. 그들의 몰락은 단지 시대의 변화 때문만이 아니다. 스스로의 욕망이 만든 덫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극이지만, 아름답고 강렬한 인간 드라마이기도 하다.

 

데이미언 셔젤의 연출 철학과 영화 산업에 던지는 질문

바빌론(2022)은 단순한 시대극도, 화려한 스펙터클도 아닌, 말 그대로 ‘영화에 대한 영화’다. 데이미언 셔젤은 이 작품을 통해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마법과 폭력, 환상과 잔혹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영화 산업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영원한가’, ‘영화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소멸하고 남겨지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시청자에게 남긴다. 셔젤은 바빌론에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격변기의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삼는다. 이 시기는 단지 기술적인 전환점이 아니라, 영화 산업 전체가 정체성과 윤리를 재구성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감독은 이 혼란의 시기를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영화라고 부르는 집단적 환상이 어떤 식으로 구축되고 유지되어 왔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바빌론은 찬란하게 보이는 스크린 뒤에 존재하는 희생과 타락, 그리고 비인간화된 시스템의 잔혹한 이면을 고발한다. 셔젤의 카메라는 그 세계를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욕망, 광기, 예술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화려한 조명 아래 숨어 있는 어둠을 폭로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몽타주는 셔젤의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영화는 매니가 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끝을 맺는다거기서 관객은 영화의 역사와 진화를 담은 장면들을 목격하며, 스크린이라는 세계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감정, 욕망이 담긴 살아 있는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장면은 영화가 기술과 시대를 넘어 인간 존재를 어떻게 포착해 왔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셔젤은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진심은 영원하다”는 신념을 담고 있다. 또한 그는 이 작품에서 영화 산업이 가진 양면성을 지적한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괴물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고통과 사랑, 꿈을 보존하고 전파하는 가장 순수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 세계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이 질문은 결국 우리가 영화라는 환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바빌론은 데이미언 셔젤의 깊은 애정과 회의, 그리고 집요한 탐색의 산물이다. 그는 영화를 찬양하지도, 단순히 비판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것을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다룬다. 그는 말한다.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변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잊히고 사라졌지만, 그들의 흔적은 결국 스크린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을. 바빌론은 영화가 무엇을 기억하고, 또 무엇을 망각하게 만드는지를 되묻는, 시대를 꿰뚫는 고백이자 성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