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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욕망과 권력의 궁전

by manymoneyjason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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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욕망과 권력의 궁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왕좌를 둘러싼 사랑과 질투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18세기 영국 궁정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의 욕망과 질투, 사랑의 본질은 그 시대를 초월한다. 이 작품은 앤 여왕과 그녀의 측근 사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하녀 애비게일이라는 세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겉으로는 권력을 둘러싼 정치극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랑과 인정 욕구, 불안과 고립이라는 매우 내밀한 감정의 싸움이다. 왕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세 여성의 심리적 줄다리기는, 단순한 정치적 야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은 육체적으로 병약하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인물이다. 그녀는 절대권력을 가진 왕이지만, 사적으로는 끊임없이 타인의 애정을 갈구하는 외로운 존재다. 여왕과 오랜 친구이자 실질적 권력자인 사라(레이첼 와이즈)는 그러한 여왕의 불안정을 인지하고 있으며, 때론 냉정하게 다루기도 하고, 때론 깊은 정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관계는 철저히 균형 위에 놓여 있다. 그 사이에 하녀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등장하면서 균형은 급속히 무너진다. 애비게일은 외면적으로는 순박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상류층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강한 야망을 품고 있다. 그녀는 여왕의 신임을 얻기 위해 점점 더 치밀하게 접근하고, 결국엔 여왕의 마음을 얻으며 사라를 밀어낸다. 이 세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삼각관계를 넘어서, 감정과 권력, 신뢰와 배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감정이 단순히 전략적인 것이 아니라, 진심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사라와 여왕의 관계는 실제로 오래된 애정과 유대를 기반으로 하지만, 여왕의 애정을 독점하려는 사라의 태도는 집착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반면 애비게일은 처음엔 생존을 위한 움직임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권력을 쥐는 데서 오는 쾌락과 소유욕에 사로잡히게 된다. 영화는 그들의 감정을 흑백처럼 나누지 않고, 모든 인물에게 다층적인 감정의 복잡성을 부여한다. 결국 이 영화는 권력을 매개로 한 심리 드라마이자, 사랑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품이다. 세 여성의 관계는 한편의 연극처럼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말투, 눈빛, 침묵은 마치 전쟁터에서의 전술처럼 강렬하다. 이 정교한 심리전은 관객에게 단순한 서사 이상의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전통을 비트는 파격적 연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더 페이버릿을 통해 고전적인 시대극의 외형을 따르면서도, 전형적인 규칙을 과감하게 뒤틀며 자기만의 연출 세계를 밀도 있게 펼쳐낸다. 이 영화는 배경상으로는 18세기 영국 궁정이라는 역사적 공간을 차용하지만, 그것을 단순한 ‘재현’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대극이라는 장르의 틀을 해체하면서 권력, 성,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탐구를 감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감독의 가장 두드러진 연출 특징 중 하나는 광각 렌즈와 어안 렌즈의 파격적인 사용이다. 이는 등장인물들을 왜곡된 형태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처한 감정 상태나 권력의 위태로운 균형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특히 넓은 궁정의 공간을 찍을 때, 화면은 종종 비현실적으로 퍼져 보이는데, 이는 인물들의 고립감과 심리적 불안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이러한 기법은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함과 동시에 고전적 미장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또한 조명과 색채 사용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자연광에 가까운 채광 방식은 당시 시대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포착하면서도, 인물들의 그림자를 강조하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밝고 장엄한 궁전 속에서도 어딘가 냉담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도는 이유는, 이 조명과 색감의 절묘한 조합 덕분이다. 전통적으로 화려하고 따뜻하게 그려졌던 시대극 속 궁정을, 란티모스는 오히려 차갑고 낯설게 묘사함으로써 권력의 비정함을 드러낸다. 음악 또한 전통을 따르되 전통에서 벗어난다. 클래식 음악이 배경을 채우지만, 그것이 감정을 유도하거나 장면을 고조시키는 방식이 아닌, 오히려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며 인물 간의 긴장과 단절을 부각시킨다. 낯선 타이밍의 음악 삽입과 때로는 갑작스러운 정적은 관객으로 하여금 장면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더 페이버릿을 통해 보여준 가장 큰 미덕은 관객의 감정 조작을 최소화한 서술 방식이다. 그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차갑게 거리를 둔다. 하지만 그 거리감 속에서 오히려 관객은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게 되고, 그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은 그의 전작들인 더 랍스터나 킬링 디어에서도 나타나는 방식이지만, 더 페이버릿에서는 시대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더 세련되고 은유적으로 진화한 형태로 구현된다. 이렇듯 더 페이버릿은 역사극의 전통을 빌려오되, 그 안에서 란티모스 감독만의 독창적인 시선과 실험이 빛나는 작품이다. 형식의 자유로움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영화는, 단지 미적으로 아름다운 시대극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날 선, 그리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현대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역사 속 인물의 재해석과 배우들의 명연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실존했던 인물들을 바탕으로 하지만, 단순한 역사 재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창조적으로 해석하며, 인간 내면의 권력욕과 감정의 이면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앤 여왕, 사라 처칠, 애비게일 힐이라는 실존 인물들은 실제로도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영화는 그 사실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허구를 덧붙여 보다 드라마틱하고 심리적인 서사를 구축한다. 앤 여왕은 실제로 17번의 유산과 아이를 잃은 기록이 있는 인물로, 그녀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정치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신체적, 심리적 약점을 깊은 외로움과 애정 결핍의 문제로 확장하며, 관객이 그녀의 내면에 공감하도록 만든다. 이 역할을 맡은 올리비아 콜맨은 감정의 진폭이 넓은 캐릭터를 놀라운 균형감으로 연기했다. 그녀는 때로는 유약하고 아이 같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무섭도록 권력적이며 잔인해진다. 이 복잡한 인물을 연기한 덕분에 그녀는 2019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레이첼 와이즈는 사라 처칠 역을 맡아, 사랑과 충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을 묵직한 카리스마로 그려냈다. 그녀는 여왕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이자 애인이면서도, 때때로 여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사라는 단지 냉철한 권력자가 아니라, 진심을 숨긴 채 감정과 논리를 기묘하게 교차시키는 복합적 인물이다. 와이즈는 이 인물을 통해 냉정함 속의 슬픔과 강인함 속의 고독을 절묘하게 표현해 낸다. 엠마 스톤은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는 인물인 애비게일을 연기하며, 영화의 긴장감과 에너지를 이끄는 축이 된다. 그녀는 처음엔 희생양처럼 보이다가 점차 야망을 드러내고, 결국 여왕의 총애를 독점하려는 냉혹한 전략가로 변화한다. 엠마 스톤은 이 이중적인 인물을 결코 단순한 악역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생존을 향한 몸부림과 끊임없는 계산 속에서도 감정을 유지하며, 관객이 그녀를 비난하면서도 이해하게 만든다. 세 배우는 실제로도 긴 시간 함께 리허설하며 캐릭터 간의 관계를 구축했다고 알려졌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종종 배우들에게 각본 없이 장면을 즉흥적으로 연기하게 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흐름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단지 ‘연기력이 좋은’ 수준을 넘어, 세 인물이 실제로 궁정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더 페이버릿은 역사적 진실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틀 안에서 인간의 본성과 감정의 민낯을 창의적으로 펼쳐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뛰어난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캐릭터 해석 덕분에 더욱 설득력 있게 완성된다. 이 영화는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동시에, 권력과 사랑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하고 위험할 수 있는지를 예술적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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