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자연과 인간의 경계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자연과 인간의 경계

by manymoneyjason 2025. 4. 6.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자연과 인간의 경계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생존을 향한 몸부림: 휴 글래스의 여정과 감각적인 서사

‘생존을 향한 몸부림: 휴 글래스의 여정과 감각적인 서사’라는 주제는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핵심 서사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이 작품은 19세기 초 북미 대륙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실존 인물 휴 글래스(Hugh Glass)가 겪은 극한의 생존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단순한 실화 재현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과 고통, 그리고 의지의 의미를 서사 전체에 녹여낸다. 영화는 휴 글래스가 모피 사냥 원정대의 길잡이로 참여한 시점에서 시작된다. 원정 중 그는 회색곰의 공격을 받고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동료들은 그를 구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결국 남겨두기로 결정하고, 그중 존 피츠제럴드는 더 나아가 글래스의 아들인 호크를 살해한 뒤, 부상당한 글래스를 눈 속에 묻어두고 떠나버린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난 글래스는 인간의 본능과 의지만으로 생존을 위한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 여정은 단순히 육체적 회복을 넘어 정신적, 감정적 회복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거친 설원과 빙하, 강을 넘으며 죽음의 경계에 맞서 싸운다. 이러한 장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고통을 함께 체험하도록 만들며, 그의 숨소리, 눈빛, 침묵이 말보다 강렬한 전달력을 가진다. 글래스는 여정 중 끊임없이 아내와 아들의 환영을 보며 정신을 붙잡고, 자연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다. 영화는 말보다 이미지로 감정을 전하는 방식으로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마지막에 그는 피츠제럴드를 찾아 복수를 실현할 기회를 얻지만, 결국 복수를 자연의 섭리에 맡기며 자신의 고통을 초월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 장면은 영화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고통과 상실을 넘어선 인간의 내면을 다룬 이야기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의 줄거리는 죽음에 맞선 투쟁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내고 삶을 증명하려는 한 인간의 깊은 몸부림을 그리고 있었다. 《레버넌트》는 생존의 본질과 인간의 의지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압도적 풍광과 시각적 서사의 조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대사도, 인물도 아닌, 광활하게 펼쳐진 대자연이다. 이 영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단순한 배경의 개념을 넘어서, 하나의 '존재'로서 자연을 인물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다. 이를 가능하게 한 중심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예술적 감각과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혁신적인 시각언어가 있다. 이들은 “가능한 한 자연의 빛만을 사용하자”는 원칙 아래 혹독한 촬영 환경을 감수하며, 이야기의 중심에 자연을 직접 끌어들였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새벽안개가 낀 설원 위로 해가 떠오르며, 그 속을 홀로 걷는 글래스의 실루엣이 천천히 다가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자연의 거대함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시각적으로 압도하며 표현한다. 또한 곰과의 사투, 강물 속 도주, 혹한의 숲에서의 생존 등은 단순한 장면 연출이 아닌, 자연과의 긴장감 넘치는 '공존' 그 자체였다. 특히 루베즈키는 롱테이크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인물의 시점과 관객의 시점을 일치시키고,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관객에게 감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깊은 몰입감을 주며, 인위적인 장면 구성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전해주는 위압감과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이 방식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자연 속에 자신을 녹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영화의 주제 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또한 자연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생명을 앗아갈 것처럼 혹독하다가도, 갑작스레 정적인 아름다움으로 말을 건다. 이는 마치 글래스의 내면 상태와도 겹쳐지며, 관객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글래스의 감정을 읽게 된다. 자연은 이 영화에서 배경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감정의 전도체이자, 인간의 의지와 생존을 시험하는 궁극의 시험장이었다. 결국 《레버넌트》는 인간이 자연을 이기거나 정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강인함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시각적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연 그 자체를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보기 드문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고통 너머의 복수, 그리고 구원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겉으로 보면 처절한 복수극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아들을 눈앞에서 잃은 남자가, 그를 배신한 자를 찾아 황량한 설원과 숲을 헤매며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 하지만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복수 이상의 것에 있다. 영화는 주인공 휴 글래스의 여정을 통해 인간이 극한 상황 속에서도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며, 그 끝에서 무엇을 놓아야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를 묻는다. 글래스가 맞닥뜨린 고통은 육체적이면서도 심리적이다. 곰의 습격으로 거의 죽음에 이르고,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 사로잡히며, 동료에게 배신당한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를 붙잡는 건 오직 하나, 복수다. 그러나 영화는 이 복수심이 단순히 복수를 위한 복수가 아님을 시사한다. 이는 아들을 향한 사랑의 연장선이며, 자신이 인간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본능이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복수는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복수는 인간을 어디까지 데려가는가?’라는 더 근원적인 성찰로 나아간다. 글래스는 결국 피츠제럴드를 찾아내지만, 그를 자신의 손으로 끝내는 대신 “자연에게 맡긴다”. 이는 단순한 용서의 행위가 아니라, 복수라는 집착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선택이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다했음을, 그리고 복수의 끝에 남는 허무함을 알기에 자연이라는 더 큰 질서 속에 그를 넘긴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남긴다. 인간의 고통은 집착으로 이어지지만, 진정한 구원은 그 집착을 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복수는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잃게 된다. 글래스가 자연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는 마지막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구원의 순간이자 자기 자신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레버넌트》는 복수극이라는 외피를 두른 채,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심오한 철학적 여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남고, 무엇으로 자유로워지는가. 영화는 그 답을 복수의 끝에서, 구원의 시작으로 우리에게 건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