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SF’의 철학적 궤도
애드 아스트라는 거대한 우주를 탐험하는 영화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외부 세계보다 오히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영화다. 대다수의 SF 영화가 문명의 위기, 외계 생명체, 우주 전쟁 등을 내세워 외적인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이 영화는 거의 정반대의 방향을 택한다. 고요한 우주의 침묵은 곧 주인공 로이 맥브라이드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우주를 향한 여정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 ‘아버지’라는 존재를 향한 심리적 귀환의 여정이다. 영화는 우주의 무한한 확장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 존재의 ‘단절된 감정’이라는 무한한 공허에 주목한다. 로이는 직업적으로 완벽한 임무수행 능력을 갖춘 우주비행사지만, 내면은 무감각해지고 인간관계는 거의 단절된 상태다. 영화의 시작부터 로이는 심박수를 80 이하로 유지하는 훈련된 감정 억제자다. 하지만 그가 마주하게 되는 미지의 진실, 곧 실종된 아버지의 존재는 그의 정신 구조를 서서히 흔든다. 이처럼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라는 공간을 통해 감정을 배제해 온 한 인간이 감정을 되찾고,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서사를 은유적으로 펼쳐 보인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전개는 철저히 ‘불확실성’에 의해 이끌린다는 점이다. 로이는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찾아 나서는 임무를 부여받지만,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그가 정말 살아있는가?”, “그는 왜 돌아오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이는 단순한 소재적 미스터리를 넘어서, 아버지를 ‘부재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다. 자신이 잃어버린 감정, 억누른 슬픔, 혹은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내면이 투영된 존재가 바로 아버지라는 점에서, 이 여정은 실은 인간이 자기 내부의 공백을 메우려는 ‘치유의 행위’다. 애드 아스트라는 ‘지구를 떠나 먼 우주로 간다’는 표면적 이야기보다 ‘결국 지구로, 그리고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귀환의 서사에 훨씬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영화가 말하는 ‘성장’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정복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진정한 성장과 진보는 ‘상처를 인정하고, 과거를 이해하고, 자신이 억눌러온 감정을 복원하는 것’에 있다는 메시지를 고요한 화면과 여백 많은 대사, 그리고 쓸쓸한 우주의 이미지로 전달한다. 결국 이 영화는 우주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우주에 반사되는 인간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고독은 단지 비극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발판이다. 이처럼 애드 아스트라는 감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장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이며, 우주라는 차가운 배경을 빌려 인간의 가장 뜨거운 감정을 되살리는, 철학적인 ‘고요의 우주 서사시’로 자리매김한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로이 맥브라이드’의 얼굴
브래드 피트는 애드 아스트라에서 커리어 중 가장 내성적이고 정제된 연기를 선보인다. ‘로이 맥브라이드’라는 인물은 겉으로 보기엔 냉정하고 철저하게 훈련된 엘리트 군인이자 우주비행사지만, 그 내부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감정적 공허와 애증으로 가득 차 있다. 브래드 피트는 이 복잡하고 억눌린 내면을 목소리의 진폭과 눈빛, 미세한 표정의 움직임으로 풀어낸다. 소리 지르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오히려 최대한 침묵 속에서 인물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감정의 연금술사’에 가깝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그의 ‘목소리’다. 대부분의 감정은 내레이션을 통해 흘러나오며, 이는 극 중 로이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유일한 창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내레이션마저도 감정적으로 격앙되거나 고조되지 않는다. 차분하고 일관된 어조 속에서 피트는 감정을 절제된 방식으로 전달하며, 그 억제된 목소리에서 오히려 더 깊은 상처와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대사 전달이 아닌, ‘감정을 담아 억누르는 연기’라는 고차원의 테크닉이다. 이와 같은 연기의 방향은 감독 제임스 그레이와의 깊은 대화에서 비롯됐다. 그레이 감독은 피트에게 “우주는 너의 적이 아니라 너 자신의 거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캐릭터 연기에 중요한 방향성을 부여했으며, 피트는 캐릭터가 외부 세계와 갈등하기보다는, 내면의 흔들림을 감정적으로 추적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구축했다실제로 촬영 현장에서도 피트는 감정의 폭발보다, ‘감정을 품고 가만히 있는 것’을 연기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연기는 때로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로이의 감정 변화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고, 인간관계를 피하며, 업무에만 집중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우주 탐사가 깊어질수록, 그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고, 더 이상 무덤덤할 수 없게 된다. 브래드 피트는 이런 변화를 빠른 호흡이 아닌 아주 느린 호흡으로 표현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 미묘한 떨림에 공감하게 만든다. 클라이맥스에서 아버지를 마주하는 장면은 감정이 격렬하게 폭발하는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피트는 극도로 절제된 태도 안에서 애절한 눈빛과 짧은 대사 몇 마디로 복잡한 감정을 응축시킨다. 이것이 오히려 장면의 파급력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된다. 결국,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보여주는 연기’가 아니라 ‘들어주는 연기’다. 관객은 그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감정을 읽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더욱 깊은 공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전형적인 스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조율할 수 있는 성숙한 배우로서의 역량을 다시금 입증했다. 피트가 애드 아스트라로 보여준 연기는, 우주의 고요함만큼이나 잔잔하지만, 그 울림은 오래 남는다.
연출, 촬영, 그리고 그 이면의 의도
애드 아스트라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내면으로 향하는 여정을 우주의 스케일로 확장시킨 철학적인 명상록이다. 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이 영화를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오디세이이자, 존재와 고독, 인간 관계의 본질을 탐색하는 여정”이라고 설명한다. 전작인 이민자(2013), *잃어버린 도시 Z(2016)*에서 보여준 묵직하고 서정적인 연출은 애드 아스트라에서 우주의 고요함과 함께 한층 더 깊이 있게 펼쳐진다. 그레이 감독은 전형적인 SF의 문법에서 벗어나, 공간보다 인물의 심리를 중심에 둔 서사를 선택한다. 그 결과, 영화의 많은 장면은 ‘웅장함’보다는 ‘정적’에 집중되어 있으며, 카메라는 언제나 로이의 얼굴과 감정의 방향을 따라간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유려한 촬영을 담당한 호이트 반 호이테마(Hoyte van Hoytema)의 카메라다. 그는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의 작품에서 입증된 뛰어난 시각 미학을 바탕으로, 이번 영화에서도 우주라는 광활한 배경을 ‘내면의 무대’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촬영의 상당 부분이 지구에서 이루어진 세트와 조명 효과를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달에서의 추격전이나 화성 기지 장면들은 실제 우주 미션에 근접한 사실성을 구현하기 위해 물리적인 특수 효과와 아날로그 감성을 조화시켰다. CG보다는 실제 세트를 활용해 배우들에게 ‘느껴지는 우주’를 만들어 주는 방식은, 브래드 피트의 몰입감 있는 연기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피트는 실제로 고백하기를, “그레이 감독은 촬영장에서 조용한 음악을 틀며 감정을 유도하거나, 내레이션처럼 속삭이는 분위기로 장면을 연출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연출의 또 다른 특징은 불확실성과 여백의 미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로이가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는 과정이나 그 감정의 전이 과정은 다소 암시적이고 절제되어 표현된다. 이는 관객이 로이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각자의 경험을 투영해 해석하게 만드는 열린 연출 방식이다. 이처럼 애드 아스트라는 이야기의 완성도를 시청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제임스 그레이가 사랑하는 유럽 아트 시네마의 영향과도 밀접하다. 또한, 음향 디자인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라는 무음의 공간에서 음향은 더욱 중요해진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진공 상태의 고요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부 사운드를 최소화하고, 주인공의 심장 소리, 호흡, 기계음처럼 내밀한 소리들을 강조했다. 이는 긴장감을 더하면서도 ‘고립된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음악 감독 맥스 리히터(Max Richter)가 작곡한 사운드트랙은 마치 클래식처럼 관조적이고 서정적이며, 우주의 광대함보다는 인간의 작고 미세한 감정을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처럼 애드 아스트라는 비주얼과 내면의 감성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예술적인 연출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거대한 우주선이나 화려한 특수효과가 없는 대신, 정지된 우주 공간 속에서 관객은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인간이란 존재가 궁극적으로 누구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되묻게 된다.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그래서 화면의 크기보다도, 그 안에 담긴 고요한 질문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