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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나를 찾는 여정”

by manymoneyjason 2025. 4. 9.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나를 찾는 여정”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멀티버스를 통한 자아의 해체와 재구성

에벌린 왕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단조롭다. 세탁소 운영, 남편과의 갈등, 반항적인 딸과의 거리감, 국세청 조사까지 겹친 그녀의 삶은 어지럽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은, 곧 거대한 멀티버스의 중심축으로 뒤바뀐다. 다양한 차원에서의 에벌린은 배우, 요리사, 무술가, 심지어 손가락이 핫도그인 존재로 등장하며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가진 가능성의 조각들을 시각화한 구조이다. 즉, 영화 속 멀티버스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삶의 갈래, 혹은 놓쳐버린 자아의 그림자들로 가득 차 있다. 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에벌린은 끊임없이 다른 자신과 접속하며 현실의 자아를 해체당한다. 각각의 우주는 하나의 거울이며, 그녀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반사한다. 이 과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의 결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더불어 영화는 이 모든 가능성을 접한 후에야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철학적 여정을 따라간다. 결국 에벌린은 온 우주의 정보를 흡수하면서도 ‘현재의 삶’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한다. 이는 자아의 재구성, 즉 모든 삶을 잠시나마 이해한 후에야 자기 존재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멀티버스라는 복잡하고 파편화된 구조는,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반영하고, 그 와중에도 중심을 찾아가야 하는 인간의 여정을 상징한다. 이렇게 영화는 혼돈을 통해 오히려 자아를 선명하게 마주하게 만든다.

 

세대를 관통하는 상처와 화해의 서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멀티버스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서사이지만, 그 중심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 곧 ‘가족’이 있다. 특히 영화는 어머니와 딸, 그리고 부부간의 관계를 통해 세대 간의 단절, 상처, 그리고 이해와 화해의 과정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에벌린은 자신의 삶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딸 조이의 정체성과 태도에 혼란을 느끼며 끊임없이 거리를 둔다. 조이 역시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 자신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피로에 지쳐 있다. 이처럼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은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서, 이민자의 정체성, 문화적 충돌, 그리고 부모 세대가 자식에게 무심코 전가한 기대와 억압의 문제까지 품고 있다. 이 갈등은 멀티버스를 통해 극대화된다. 조이의 또 다른 자아인 ‘조부 투파키’는 모든 가능성을 초월한 무(無)의 상태에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는 곧,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한 자아가 도달하는 궁극적인 허무를 상징한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 에벌린은 처음엔 ‘모든 것을 고쳐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지만, 결국 그녀의 방식이 문제였음을 깨닫는다. 이해보다는 통제가 앞섰고, 걱정보다는 기대를 강요했으며,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고백과도 같은 자각이 이뤄진다. 이 과정은 극적인 전환점이 되며, 서로를 잃을 뻔한 모녀가 진심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또한 남편 웨이먼드와의 관계 역시 중요한 축을 이룬다. 처음엔 소극적이고 유약해 보였던 웨이먼드가, 다양한 우주 속에서 타인을 대하는 태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진정한 강함이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에벌린의 내면에 변화가 생긴다. 그간 무시되었던 부드러움과 배려의 가치가 오히려 혼돈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음을 알게 되며, 부부 사이에도 새로운 이해가 싹튼다. 결국 이 영화가 전하는 관계의 무게란, 얽히고설킨 갈등과 오해를 통해서만 진정한 이해와 화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진리이다. 세대 간의 벽, 가족 간의 거리, 부부 사이의 틈마저도, 서로의 고통과 외로움을 들여다보는 순간 녹아내릴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 어떤 화려한 액션과 멀티버스보다, 가장 강렬하게 마음에 남는 것은 바로 이 작고 소중한 진심의 교류다.

 

허무와 혼돈을 견디는 방법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제목 그대로, 모든 것이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존재하는 혼돈의 세계를 무대로 한다. 이 멀티버스의 개념은 단순한 설정을 넘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모든 선택이 무의미하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관객에게 정면으로 던져진다. 수많은 가능성과 우주의 갈래 속에서, 삶의 의미는 점점 흐려지고, 결국 허무의 블랙홀(영화에서는 베이글의 형상으로 상징된다)에 빨려들 듯한 위기에 처한다.  조부 투파키, 곧 조이의 또 다른 자아는 이 모든 가능성을 경험한 끝에 삶의 무의미함에 압도당한다. 그녀에게 세상은 의미 없는 연속이고, 모든 결정은 결국 같아지는 먼지와 같다.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느끼는 존재론적 공허를 투영한다. 끝없는 선택지 속에서 우리는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무력감을 느낄 수 있으며, 그 혼란은 자칫 깊은 허무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는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그 무의미함을 삶의 중요한 실마리로 전환시킨다. 에벌린의 깨달음은 바로 그 반대편에서 시작된다. 모든 가능성이 무의미하다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역설. 우리가 가진 유일한 현실, 곧 이 우주의 평범한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근거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거대한 멀티버스를 떠도는 끝에, 자신이 매일같이 접하던 사소한 삶의 조각들(빨래방, 가족,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소리)이야말로 가장 큰 진리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결국 영화는 철학적 허무에 굴복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작고 단단한 의미의 씨앗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거대한 개념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답을 인간적이고 사적인 순간에서 찾아낸다는 데 있다. 멀티버스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우리가 찾는 건 화려한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와 ‘너’의 연결이다.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가 붙잡아야 할 단 하나의 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의지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혼돈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며,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가장 깊은 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