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리투의 파편적 서사 구조
바벨은 네 개의 서로 다른 문화권, 언어, 인간들이 겪는 단절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이어가며, '소통'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고통의 공통분모로 묶어낸다. 이냐리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언어, 지역,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절망이 실은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영화는 미국, 모로코, 멕시코, 일본 네 지역을 오가며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들을 병렬적으로 배치한다. 처음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 이야기들이, 하나의 사건(총기 발사)으로부터 얽히며 서서히 연결되는 구조는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몰입을 선사한다. 이러한 파편화된 서사는 고전적인 내러티브의 규칙을 깨뜨리고, 관객 스스로 의미를 조합하도록 유도한다. 감독은 이를 통해 단순히 사건의 결과보다 그 안에 놓인 인간의 감정, 이해되지 않는 고통,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비롯된 비극에 더 초점을 맞춘다. 특히 모로코에서 총을 쏜 소년과 피해를 입은 미국인 부부, 그들의 아이를 돌보던 멕시코 가정부, 그리고 일본의 청각장애를 지닌 소녀, 이 모든 인물들은 전혀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졌지만, 모두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된 상처를 안고 있다. 이냐리투는 <바벨>을 단순한 글로벌 비극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그는 분열된 세계 속에서도 고통과 단절은 언어를 초월해 비슷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끌어낸다. 이 방식은 그가 이전에 연출했던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에서도 시도되었던 다중 서사 전략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바벨>에서는 보다 철학적인 깊이와 정치적 맥락이 함께 들어간다. 특히 사건의 중심이 되는 총기, 미국에서 아프리카를 거쳐 모로코로 흘러간 이 총은 세계화된 폭력의 상징이자, 인간 사이의 오해와 단절의 물리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결국 <바벨>은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 안의 인간들은 얼마나 쉽게 서로를 오해하고 단절하는지를 구조적으로 보여준다. 단절의 현실을 ‘파편적 서사’라는 영화적 언어로 풀어낸 이냐리투의 연출은, 그 자체로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남긴다.
사운드와 연출로 드러난 단절
바벨은 그 제목처럼 인간 사이의 '언어의 혼란'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 작품이다. 그러나 이냐리투 감독은 단순히 말이 통하지 않는 장면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침묵과 소리 자체를 소통의 실패를 표현하는 감각적인 도구로 활용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는 일본 청각장애 소녀 치에코의 이야기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물론, 사회와의 접촉에서도 단절된 채 외로움 속에 살아간다. 말소리 대신 음악과 효과음을 제거하고, 청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한 시청각 연출을 넘어, 관객이 직접 '단절의 감각'을 경험하게 만든다. 사운드 디자인의 극단적인 제한은 치에코의 심리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클럽에서 음악이 멈추고, 그녀의 시선으로 세상이 고요해질 때, 우리는 그저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존재로서의 고독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침묵은 말보다 더 큰 고통의 언어가 된다. 반대로, 모로코 사막에서 브래드 피트가 아내를 잃을까 두려워하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장면에선, 점점 더 증폭되는 긴장감과 날카로운 외부의 소리들이 '절박한 소통의 시도'를 음악 없이 강조한다. 또한 이 영화는 자막을 포함한 언어 간 전환 역시 철저히 통제해 관객에게 불편함을 유도한다. 관객이 어느 나라 언어든 이해하지 못하도록 일부 대화에 자막을 생략하는 장면들은, 우리가 흔히 느끼는 ‘소통의 무력감’을 몸소 느끼게 만든다. 단지 스토리 전개를 위한 요소가 아니라, 이 영화에서의 언어는 ‘단절’을 구조화하는 장치로 존재한다. 이냐리투 감독은 ‘보이지 않는 감정의 언어’를 찾아내는 데 천부적인 감각을 지녔다. 바벨에서는 그것이 ‘침묵’과 ‘왜곡된 음향’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는 언어를 모르는 타인의 말을 듣는 장면보다, 들리지 않는 순간에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는 언어란 본래 인간을 잇기 위한 도구이지만, 그만큼 쉽게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캐스팅과 문화의 충돌
바벨의 가장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각기 다른 문화권의 배우들이 한 영화 안에서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냐리투 감독은 단순히 글로벌한 배경을 구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지역의 배우들이 지닌 고유한 연기 결을 존중하며 그 안에서 현실적인 감정을 끌어냈다.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은 미국 부부 리처드와 수잔 역을 맡아, 고립된 사막 속에서 사랑과 분노, 무력감 사이를 오가는 부부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피트는 이 작품에서 특유의 스타성을 최대한 절제하고, 지쳐가는 남편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자신이 단순한 헐리우드 스타가 아닌 ‘배우’ 임을 증명해 냈다. 모로코에서 총을 쏜 소년들 역은 실제 비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해 사실감을 높였는데, 이들의 연기는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강화하며 이야기에 무게를 더했다. 또한 일본 파트의 치에코 역을 맡은 기키 키린과 아역 배우 라린 코노는 전혀 다른 감정선을 요구받았음에도, 사회적 단절과 개인의 외로움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치에코 역의 아역 배우 리코 키쿠치는 실제로 청각장애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해 청각장애인의 심리와 행동을 리얼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열연은 2007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지명으로 이어졌고, 이는 일본 배우로선 매우 드문 사례였다. 촬영 비하인드에서도 바벨의 제작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전 세계 4개국에서 각각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일하며 감독과 제작진은 끊임없이 언어 장벽과 촬영 환경의 차이를 극복해야 했다. 실제 모로코 사막에서의 촬영은 극도의 기온차, 통신 부족, 보안 문제 등 여러 현실적 문제에 부딪혔으며, 미국과 멕시코 장면은 국경 문제와 관련된 현실 정치와도 맞물려 제작에 난관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들은 오히려 영화의 리얼리즘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냐리투 감독은 다양한 문화의 ‘충돌’ 속에서 배우들이 오히려 진솔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바벨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치밀한 캐스팅, 그리고 실제 세계의 긴장과 혼란을 고스란히 반영한 제작 환경이 조화를 이루며,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선 인간적 진실을 담아냈다. 이 작품은 캐릭터와 배우가 함께 성장하고, 그들의 문화적 차이가 오히려 보편성을 증명하는 강력한 서사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